<다큐 On> 1926년 일제 탄압 속 만들어진 '가갸날'...한글날 100년 수호사

  • 2026.10.08 14:37
  • 17시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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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9일은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우리 글자를 지키기 위해 제정되었던 ‘한글날’이 100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다. 훈민정음 발표 후 580년 동안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고, 오늘날 세계적인 문자로 인정받기까지 한글이 지켜온 역사와 의미를 함께 짚어본다.

세종대왕이 글자를 만들었던 이유는 ‘백성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것을 전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자는 외우기도, 쓰기도 어려웠을뿐더러 우리말과 맞지 않아 오랜 공부가 필요했다. 반면 한글은 소리글자로 누구나 쉽게 읽고 쓸 수 있도록 간단하면서도 정밀하게 설계됐다.

한글 반포 불과 3년 만에 도성에는 당대 정승을 비판하는 한글 벽보가 나붙었다. 이는 지배계층뿐만 아니라 한글을 아는 백성들까지 글을 읽고 공감해 주길 바란 시도로, 한글이 조선 사회에서 새로운 소통 수단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이후 '홍길동전', '춘향전' 등 한글 소설이 널리 퍼지고 책 대여점인 세책방이 성행하면서 한글을 매개로 한 민중 문화가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조선 시대의 대부분 공식 기록은 한문으로 작성되었으나, 1894년 고종은 국문 칙령을 통해 모든 법률 문서를 한글로 기록할 것을 명했다. 마침내 한글이 나라의 공식 기록 문자가 된 것이다. 국문 칙령 이후 순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이 발간되었고, 백성들은 신문을 통해 나라의 일과 각 지역의 소식을 접하며 세상을 넓혀 나갔다.

한글이 백성들 사이에서 널리 퍼질수록 학자들은 한글 교육과 맞춤법 등 체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렇게 한 걸음 더 내디딜 무렵, 1910년 한일병합조약 강제 체결을 통해 대한제국은 어둠 속에 묻혔다. 당시 일제는 조선교육령을 통해 ‘국어(일본어) 보급’에 나설 것을 공포했다. 이후 학교에서는 우리말과 글 대신 일본어를 국어로 배웠다.

한글이 점차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인 1926년, 당시 각계 지식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한글 반포 480주년을 기념하며 ‘한글날(당시 가갸날)’을 제정했다. 일제강점기였지만 우리글을 잊지 않고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자는 의지였다.

한글날 제정 이후 한글은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렸다. 민간에서 만든 한글 교재로 한글 보급 운동을 시작했고, 한편으론 새로운 일을 모색했다. 바로 한글 사전의 시작이었다.

1929년 사회 인사 108인이 발기하며 시작한 조선어사전 편찬위원회는 한글 맞춤법을 통일하고 표준어를 정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함경도부터 경상도까지 지역마다 사용하는 어휘가 서로 달라 표준어를 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때 활약한 사람들은 바로 학생. 각 지역에 있던 학생들은 지역 방언을 모았고 조선어사전 편찬위원회로 모인 어휘를 두고 열띤 토론을 거쳤다. 그렇게 모은 것이 무려 16만 어휘. 10년의 시간 동안 자신의 미래까지 모두 우리말 사전에 내걸었던 이들은 드디어 1939년 초고를 완성한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다시 큰 위기를 맞았다. 출판 허가까지 받았던 사전 원고는 모두 빼앗겼고, 편찬위원들은 모진 옥고를 견뎌야 했다. 잔혹한 탄압 속에서도 한글을 지키고 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삶을 바친 사람들. 그들이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과연 그들의 꿈,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사전은 순조롭게 만들 수 있었을까?

다큐 ON에서는 우리글을 사용하며 민족성을 만들어 내고, 나라를 빼앗겼을 때도 우리글을 지켜냈던 이들의 시간을 되짚어본다. 그리고 한글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에 귀 기울여본다.

KBS 1TV “다큐 ON” ‘한글날 기념 1부.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홇배이셔도’ 편은 10월 10일(토) 밤 10시 15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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