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링 에라>가 그리는 자유의 메르카토르 도법
<세일링 에라>가 그리는 자유의 메르카토르 도법

꿈을 품은 채 대양으로 나아가는 주인공들, 지구의 모든 공간을 항행할 수 있는 자유, 지도를 그려나가는 여정, 원양 무역과 해적 깃발, 보물과 유적 발굴까지. 배를 몰고 해협과 대양을 항행하면서 풍랑을 만나고, 무역을 하는 경험은 지구를 비로소 구체로 매핑, 메르카토프 도법으로 지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바다에 해양물리력을 투사해 상품과 폭력을 통제할 수 있던 모든 국가는 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었고, 현재 지구 문명의 스탠다드는 '항행의 자유'를 통해 전 세계에 자유무역을 강요할 수 있는 미국의 페트로-달러 체제라는 현실을 응시하게 된다. 반면 2020년대 복각된 "세일링 에라"의 플레이 경험은 항행의 자유가 아니라 위협받는 바다, 그리고 접근이 거부되고 있는 해안선이다. 게임의 공식 스토리에는 없지만 일본 주인공 편을 한양으로 해서 전개하다 보면, 예컨대 말라카 해협이 동북아시아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게임은 15-16세기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호르무즈가 큰 영향력이 있진 않지만, 지도그리기로 드러난 아라비아-페르시아 일대 산유국들의 해안선을 보면 이 좁은 해협을 틀어막는 것만으로도 세계 에너지 안보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음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세계체제의 좌표계가 곧 게임 속 경험의 좌표에 앞설 수도 있고, 구면의 공간을 적절한 도법으로 설계한다면 게임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그가 속한 현실의 지정학적 측면들을 냉철하게 시뮬레이션 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항행의 자유가 사라진 시대에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는 대양 시뮬레이션 게임을 플레이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가장 처음 플레이하게 되는 포르투갈의 항해사 앤드류에게 배와 자금을 후원하며 측량사로 동승하는 여성 조이스 드 프리츠, 한자동맹의 북해 헤게모니를 뚫고 대상이 되는 피오나, 정화의 아프리카 원정 항로를 쫓아 동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무역로를 구축하는 중국 여성 윤무 뿐 아니라 수많은 여성들이 구속을 벗어던지고 대양 위의 항행과 자유에 일조한다. 태생부터 해적인 주인공 압둘라나 카리브해에서 맞딱뜨리는 대해적 검은수염의 에피소드는 해적들의 민주주의가 야만적인 약탈공동체가 아니라 규약을 지켜내고 낭만화시키기 위한 전술임을 보여주는데, 플레이어는 이들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게임에 참여하거나 혹은 동료로 영입하는 프로세스에서 '해적 민주주의'의 낭만성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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