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꼬꼬무’가 허 일병 의문사 사건’을 이야기하며 41년간의 싸움 끝에 물음표로 마무리된 판결에 분노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지난 17일 방송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연출 이큰별 이동원 고혜린, 이하 ‘꼬꼬무’) 171회는 ‘허원근 일병 의문사 사건’을 주제로, 휴가를 하루 앞두고 군에서 사망한 허 일병 사망 사건을 이야기했다. 리스너는 가수 윤도현, 배우 오대환, 배우 조수향이 함께 했다.
이날 방송은 허영춘이 1999년 4월 “오늘이 16년 전 아들이 죽어간 날이다”라고 쓴 일기로 시작됐다. 당시 22살이던 큰아들 허원근이 입대 후 첫 휴가 전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 군 헌병대는 허원근 일병의 사인을 자살로 결론지었다. 중대장 전령인 허 일병이 중대장의 가혹 행위와 군 복무에 염증을 느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
군 헌병대는 허 일병이 홀로 M16소총을 든 채 폐유류고로 향했다고 밝혔다. 허 일병이 스스로 오른쪽 가슴에 총을 쐈고 바로 죽음에 이르지 않자, 왼쪽 가슴에 추가 격발을, 그럼에도 의식이 있던 허 일병이 마지막으로 본인의 머리를 쐈다는 것. 소식을 듣고 곧바로 중대본부로 향한 아버지 허영춘은 여러 의문점을 마주한다. 군은 허 일병이 폐유류고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밝혔지만, 아버지는 물이 흥건한 중대본부 바닥과, 막사 밖의 핏덩이를 목격한다. 이어 아버지는 아들 허원근의 시신엔 세 개의 총상이 있었지만, 당일 두 번의 총성을 들었다는 증언을 듣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에 얽힌 의혹을 풀기 위해 홀로 나섰으나 몇 번의 조사에도 같은 대답을 들을 뿐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2000년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 제정되고,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했다. 당시 의문사위 조사관이자 허 일병의 의문사를 담당한 김학선은 허 일병 죽음에 많은 모순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건 현장을 목격한 헌병대원들에 따르면 발견된 탄피는 단 두 발.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보고서에는 탄피 3개가 발견됐다고 쓰였다. 또 사건 현장이 깨끗한 것은 물론, 허 일병 가슴에 남은 두 개의 총상 색깔이 다른 것을 두고 부검의는 총상을 입은 시간이 다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의문사위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알아냈다. 허 일병이 숨진 것으로 알려진 전날 밤 중대본부에서 간부들의 술자리가 있었다는 것. 당시 중대본부 계원 전 상병은 선임하사가 술에 취한 후 밖으로 나왔고 그의 손에 어느 순간 총이 들렸다고 진술했다. 두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진 후 그 자리에 대기하던 허 일병이 쓰러져 있었다는 것이다. 의문사위의 조사 결과는 허 일병의 사인은 자살이 아닌 타살. 총기 오발 사고로 인해 허 일병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 이를 듣던 오대환은 “가족은 너무 가슴이 아팠을 거다”라고 공감했고, 윤도현은 “진실을 알수록 처참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진상 규명은 쉽지 않았다. 국방부의 의견은 달랐던 것. 특별 진상조사단을 구성한 국방부는 3개월 간의 조사 끝에 허 일병이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허 일병이 총을 세 번 쐈으나 군인들이 제대로 총성을 듣지 못했고, 총상의 색이 다른 것은 거리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또 사고 현장에 혈흔이 없었던 것은 허 일병이 여러 겹의 옷을 입었기 때문이고, 물청소는 대대장을 맞이하기 위해 진행됐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의문사위에 진술한 관계자들은 말을 바꿨으며, 6명의 법의학자 중 한 명은 결론을 유보했고, 나머지 5명은 자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어서 국방부와 의문사위가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까지 발생했다. 2기로 출범한 의문사위 조사관들이 재조사 중 검찰수사관 김 상사의 집에서 ‘D.B.S’ 파일을 발견한 것. D.B.S는 ‘Dirty, Black, Secret’의 약자로 ‘더러운 검은 진실’의 뜻. 그 파일에는 타살 정황이 담겨 있었다. D.B.S 기록에 따르면 감정을 의뢰한 총번이 수정됐다. 초기 의뢰했던 M16 소총의 총번과 탄피가 일치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총번이 수정된 것은 행정상 착오라고 해명했으나, 의문사위는 M16은 허 일병의 것이라고 확정할 수 없다며 타살이라고 또다시 결론을 내렸다. 국방부가 자살이라고 결론을 낸 지 2년 만이었다.
자체 조사뿐 아니라 재판 결과도 매번 뒤집혔다. 2007년 4월 국가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1심은 헌병대 수사 기록에 시간적 모순이 있다며 허 일병 사건을 타살로 인정했으나, 정부는 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1심을 뒤집고 참고인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자살로 판결했다. 결국 대법원으로 향했고, 허 일병이 세상을 떠난 지 31년 만인 2015년 9월 대법원은 초기 수사 부실로 사실 관계 파악이 불가하다며 자살인지 타살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판결을 내리고 말았다.
아들이 죽은 지 41년 만에 대법원이 ‘알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아버지 허영춘은 “제일 가슴 아픈 게 자식들을 낳아 먼저 죽게 하는 거다. 지금도 눈물이 난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 그 말밖에 할 수가 없다”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배우 조수향은 ”내 자식이 죽은 것도 슬픈데 그동안 싸우신 게”라고 말을 잇지 못하며 부성애에 존경심을 드러냈다. 장성규는 “이들이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위로했고, 장현성은 “국방의 의무가 있다면 국가는 장병들을 건강하게 돌려보내야 할 책임이 있다. 혹여 사고가 생기더라도 공정하고 투명하게 수사를 해서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고 작심 발언을 했다. 마지막으로 장성규는 “유가족이 의문이 있다면 그 의문을 정성껏 풀어주는 것도 국가의 의무가 아닐까”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방송 직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및 SNS에서는 “꼬꼬무 충격적이야. 저게 어떻게 자살로 결론날 수 있지?", "와 꼬꼬무 뭐 저런 일이 있었냐", "저렇게 군대에서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 억울한 분들 진짜", "진실을 숨기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이 더 힘들 것이다. 그 고통이 없어지려면 진실을 밝혀야 한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한편 ‘꼬꼬무’는 세 명의 '이야기꾼'이 스스로 공부하며 느낀 바를 각자의 '이야기 친구'에게,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1:1 로 전달하는 프로그램으로 매주 목요일 저녁 10시 20분에 SBS를 통해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