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 인플루엔자(AI), 구제역, 럼피스킨. 매년 반복되는 가축 전염병은 단지 축산업의 위협을 넘어,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식탁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예방, 발생 대응, 사후관리라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한 덕분에 다각적으로 대응하며 방역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매년 신종 전염병 발생, 기후 위기 등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방역환경에 맞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세계가 주목하는 대한민국 가축 방역의 현실을 짚어 보고, 우리나라가 방역 고도화를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해 본다.
가축 전염병을 막기 위해 최전방에서 일하는 대한민국의 가축 방역사는 총 472명. 가축 방역사 한 명이 평균적으로 담당하는 농가는 395곳에 달한다. 언제 어떻게 퍼질지 모르는 바이러스의 공포. 자칫하면 심각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가축 방역사들은 무더운 여름에도 하루 평균 농장 10곳을 방문하며 200km가 넘는 거리를 오가며 소, 돼지, 닭의 시료를 채취해 가축 질병을 예방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누구보다 치열한 하루를 보내는 가축 방역사들을 만나본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는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발생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해 그해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를 특별방역대책 기간으로 정하고 농가들을 예찰한다. 하지만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는 더는 겨울철에만 발생하는 질병이 아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조류 인플루엔자는 주로 철새에 의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로 철새가 텃새화 되면서 나타난 변화다. 사계절 내내 이어지는 철새포획. 단 한 마리의 잡기 위한 24시간의 사투. 이렇게 긴 대기와 반복된 허탕에도 철새 이동 경로를 예찰하는 이들의 노력으로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률은 물론 살처분 건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국민의 중요한 먹거리이자 가축 방역의 바로미터인 달걀값. 지난 3월 미국의 ‘달걀 대란’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마트에서 달걀 사재기에 나섰고, 달걀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달걀값은 일 년 만에 무려 53%나 폭등했다. 이런 진풍경이 펼쳐진 까닭은 바로 미국 전역에 확산된 조류 인플루엔자 때문이 다.
2022년부터 현재까지 1억 7천만 마리의 닭이 살처분됐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이러한 사태에 미국은 한국에 달걀을 요청했고, 우리나라는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해 한국에서 생산한 달걀을 최초로 미국에 수출할 수 있었다. 한국의 방역 시스템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계기가 된 것이다.
축산 방역 선진국인 프랑스에서는 각 지역의 축산 농가들이 자발적으로 가축 질병 예방, 진단, 방역을 공동으로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GDS라는 가축 방역 연합이 있다. 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GDS는 정부가 관리하는 핵심 질병 외에 해당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특정 질병에 대한 예찰, 관리, 감독 업무를 책임지고 수행한다.
가축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면 GDS에 연락해 후속 조치를 함으로써 질병의 조기 확산을 막는데, 이때 농장주와 수의사가 주도적으로 현장 방역에 앞장서는 것이 특징이다.
정부의 일방적인 지시를 따르는 것이 아닌 지역 단위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가축 방역을 실현하는 프랑스의 가축 방역 현장을 취재했다.
복잡해진 방역환경 속에서 정부 주도의 대응만으로는 이제 그 한계가 명확하다. 그래서 세계동물보건기구에서도 공공과 민간의 협력 체계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농장주는 ‘내 농장은 내가 지킨다’는 생각으로 방역 교육을 통해 높은 방역 의식을 갖추고, 민간 기업은 농장 밀착 관리로 맞춤형 방역 시스템을 지원하고, 정부는 이를 관리, 감독한다. ‘정부 방역·민간 컨설팅·농장 자율 실천’, 세 축을 이루는 ‘사전 예방·현장 중심·자율 방역 체계’는 달라지는 방역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한국형 방역 모델’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