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능선이 아득히 이어지는 한여름의 지리산. 노고단에서 천왕봉 하산 지점까지 약 30km에 이르는 종주 길은 1,000m가 넘는 고봉 10여 개를 오르내리는 대장정이다.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걸을수록 인생의 길과도 맞닿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너른 면적의 산악형 국립공원답게 변화무쌍한 풍경이 감동을 더한다. 넉넉한 어머니 품 같은 지리산에서 산악 등반 마니아 가족인 치과의사 오형구, 신희경 부부와 누님인 도예가 오형신 씨가 여정을 이어간다.
종주 둘째 날은 벽소령대피소에서 시작한다. 몸이 풀리자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종주를 이어갈수록 지리산의 웅장한 산세가 더욱 깊게 다가온다. 민화 속 호랑이를 흙으로 빚는 도예가 오형신 씨. 지리산의 자연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 서로를 격려하며 걷는 길, 시원한 산들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즐거운 걸음 속에 자녀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오형구 씨가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큰 재산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이다.
물이 풍부한 지리산, 길을 걷다 보면 샘터가 자주 반겨준다. 그중 선비샘에 이르러 목을 축인다. 옛날 덕평골에 살던 한 노인이 평생을 천대받고 살다가, 죽어서라도 존경받고 싶어 샘터 위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리하여 이 샘에서 물을 뜨려면 절을 하듯 몸을 숙이게 돼 노인의 소원을 이뤘다고 전해진다. 샘물 한 모금에 이야기를 곱씹자, 웃음꽃이 핀다. 울창한 숲길을 숨차게 오르니 칠선봉 가기 전 전망대에 닿는다. 전망대에 서자 천왕봉이 시야에 들어오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지친 몸에 기운을 더해준다.
세석대피소로 향하는 길, 아일랜드에서 온 트레커를 만난다. 백두대간의 일부 구간을 걷고 있다는 그는 한국의 자연에 감탄한다. 산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이 새삼 고맙다. 바위 구간을 힘껏 올라 세석대피소에 닿는다. 세석평전은 구상나무 군락과 야생화가 어우러져 고산의 정원을 이룬다. 안개 바람이 스치는 능선을 따라 촛대봉으로 향한다. 그 이름처럼 촛농이 흘러내린 듯 기묘한 바위들이 장관을 이루는, 촛대봉. 지리산의 대자연이 한눈에 담긴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직접 요리한 음식을 함께 나누고 하룻밤을 보낸다. 드디어 종주 마지막 날 아침이 밝는다. 신선들도 통천문을 거쳐야만 천왕봉에 닿는다는 이야기가 있는 통천문.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숨은 턱 끝까지 차오르지만 기대감이 발걸음을 이끈다. 마침내 천왕봉에 오르자 구름이 흘러가는 지리산의 장대한 산세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지난 여정이 떠오르며 산이 주는 지혜가 마음 깊이 스며든다. 가족과 함께해서 더 뜻깊은 지리산 종주 도전기를 에서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