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아들 삼킨 파도로 뛰어든 두 딸...‘상군 해녀’ 영자 할머니와 바다

  • 2026.02.09 09:34
  • 2시간전
  • KBS

열다섯 어린 나이에 물질을 시작해, 평생을 바다에서 보낸 김영자(91) 할머니.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오 남매를 키워낸 건 오로지 할머니의 억척스러운 물질이었다. 비양도에서 손꼽히는 ‘상군 해녀’로 누구보다 자부심이 컸지만 8년 전 바다에 하나뿐인 아들 내외를 잃은 후, 그 길로 해녀복을 벗어버렸다.

이제는 눈이 어두워 직접 바다에 들지는 못해도 딸들이 잡은 해산물을 손질하며 여전히 현역 못지않은 기개를 뽐내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빼닮은 막내딸 영미(52) 씨는 물질 2년 차 애기 해녀지만 벌써 상군 기질을 보이는 유망주다. 최근 언니 영실(67) 씨가 파도에 휩쓸리는 사고를 당한 후 홀로 바다에 나가고 있지만, 아웅다웅하면서도 물속에서는 서로의 안전을 지켜주던 유일한 짝꿍이다. 자매는 다시 함께 숨비소리를 내뱉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겨울 소라가 제철인 이맘때가 되면 어머니의 마음은 바다보다 더 시리게 얼어붙는다. 8년 전 배 사고로 돌아오지 못한 아들의 제삿날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4대 독자였던 아들이 자식도 없이 세상을 떠나자, 노모의 가슴에는 “내가 죽으면 누가 아들 밥상을 차려주나”하는 슬픔이 대못처럼 박혀 있다.

다행히 큰딸 영실 씨의 아들 한석 씨가 비양도로 내려와 삼촌의 제사를 모시며 할머니의 곁을 지키고 있다. 제삿날, 적막한 집안을 가득 채운 친척들의 온기 속에 할머니는 잠시 슬픔을 잊는다. 그리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딸의 위로에 어머니는 다짐한다. 아들을 삼킨 바다를 원망하는 대신, 남겨진 두 딸의 안녕을 위해 바다와 화해하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겠노라고.

영자 할머니의 네 딸 중 셋은 어머니의 길을 따라 해녀가 됐다. 비양도의 영실, 영미 씨와 달리 셋째 딸 영란(61) 씨는 흑산도에서 물질을 한다. 젊은 시절 어머니와 함께 흑산도로 원정 물질을 갔다가 그곳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지금까지 흑산도 해녀로 사는 영란 씨는 겨울 물질을 쉬는 흑산도 바다를 뒤로 하고 모처럼 친정 비양도를 찾았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네 모녀는 영란 씨가 가져온 귀한 전복으로 죽을 끓여 먹으며 웃음꽃을 피운다. 그리고 함께 새해를 맞는다. 든든한 가족의 응원 덕분일까. 거친 파도에 휩쓸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사고 이후 대상포진을 앓았던 영실 씨가 드디어 다시 바다로 나선다. 비양도 앞바다를 지키는 할망당에 무사 안녕을 빌며 뛰어든 바다. 영실 씨를 가장 먼저 맞이한 건 커다란 문어 한 마리였다. 마치 바다가 건네는 환영의 인사처럼, 모녀의 바다는 다시 희망으로 힘차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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