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산업 성장의 상징인 조선소. 거대한 철판 소음과 뜨거운 불꽃이 뒤엉키는 현장은 언제나 치열하다. 여름에는 달궈진 철판 때문에 더위와 싸워야 하고, 겨울에는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추위를 견뎌야 한다. 현장이 얼마나 거칠고 고된지 사람들은 조선소를 ‘물 위에 떠 있는 탄광’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곳에서 묵묵히 철을 다루며 버텨 온 조선소의 노동자, 철인들. 고된 일의 끝에서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온기 가득한 밥상이다.
걱정은 뒤로한 채 조금이라도 덜 힘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밥을 짓고, 밥때를 놓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도시락을 전달한다. 그 마음이 전해져서일까. 묵묵히 기다리는 가족과 서로의 등을 보며 버텨 온 동료들이 있기에 조선소 종사자들은 오늘도 현장으로 향한다. 이번 에서는 대한민국 산업의 중심에서 헌신적으로 일한 조선소 노동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버티게 한 밥의 힘을 들여다본다.
경상남도 창원시는 세계 오대양을 누비는 대형 선박들의 고향이다. 대형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소가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불꽃이 사방에서 튀는 위험천만한 작업 환경 탓에 보호구로 완전무장을 해야 하는데 열기와의 싸움이 어찌나 치열한지, 얼음 동동 띄운 ‘냉라면’으로 더위를 식힌다.
절단부에는 유난히 동료애가 끈끈한 철인들이 있다. 바로 김기현 씨(53세)와 그의 동료들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불어닥친 조선산업의 쇠락과 함께 조선소 철인들의 직장이 위태로웠다. 그 시기를 기현 씨와 동료들은 반년은 조선소에서, 반년은 양파밭에서 일하며 삶의 무게를 지탱했다. 그의 아내는 까맣게 타는 마음 달래며 힘든 시절을 함께 했다. 이제는 쇳가루 털어내듯 말할 수 있는 지난 과거의 이야기. 돼지고기의 뒤통수살인 ‘뒷통고기’를 구워 먹으며 그 시절의 소회를 나눈다. 함께라서 단단한 무쇠가 될 수 있었던 아버지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거대 선박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 부산광역시 감천항에는 선박들의 종합병원인 수리 조선소가 있다. 한 척의 선박이 다시 먼 여행길을 떠나기 위해선 많은 이들의 수많은 손길을 거쳐야 한다.
오늘은 러시아 선박이 부산에 정박하는 날이다. 생선을 보관하는 ‘어창’ 부근의 기름 탱크가 터져 수리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수리소의 주치의들. 어창을 다 드러내야 기름이 터진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어 서둘러 작업을 진행한다. 다른 구역에선 좁고 굽이진 공간에서 검은 기름때를 닦는 고된 노동이 시작된다.
구내식당에서는 기름 구덩이 안에서 고생한 이들을 위해서 식사 준비가 한창이다. 경상도 일꾼들의 입맛을 고려한 ‘짬뽕제육볶음’이 매콤하게 볶아지고 시원한 국물 맛의 ‘홍합탕’이 커다란 솥에서 끓는다. 식사 시간을 챙길 틈도 없이 바쁜 이들을 위해 도시락에 담아 배달까지 나간다. 밥으로 위로하고, 밥으로 힘을 얻어 선박을 치료하는 이들을 만난다.
캄캄한 어둠이 거제를 드리우면 야광봉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옥포동 자율 방범대의 대원들이다. 옥포동의 조선소에서 청춘을 보낸 이들은 이제 노장이 되어 옥포만 일대를 수호한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조선소의 노동 현장. 소음과 분진뿐만 아니라 열기와 추위 속에서 일해야 했기에 더욱 치열했던 청춘을 지나온 산업의 역군들이다. 아내들은 행여 남편이 다치지 않을까 남몰래 뒤돌아 울기만 했다는데. 속 든든히 채우고 일하길 바라며 보양 음식으로 남편을 위로했다.
바다 곁에서 일하는 남편 덕에 바닷고기를 구하기 쉬웠고, 고등어로 추어탕을 끓여 남다른 보양 음식으로 함께한 옥포의 아내들. 회사에서 나오는 돼지고기 교환권을 들고 정육점을 들락거리던 그 시절이 이제는 추억이 됐다. 아내들이 서둘러 만들던 매콤달콤한 ‘돼지고기짜글이’는 철인(鐵人)들에게 힘이고 위로였다. 돼지고기 한 점을 먹으며 추억하는 청춘의 한 페이지. 여전히 그 시절의 열정을 지닌 노장들 덕분에 옥포동의 밤은 오늘도 아름답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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