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앞으로 도착한 한 통의 투박한 자필 제보 편지. 하지만 80년대 국가 폭력을 추적해 온 탐사보도의 영역에서도 '중고생 삼청교육대'는 처음 들어보는 내용. 하지만 취재 결과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1981년부터 1988년까지, 전두환 군부의 ‘순화교육’에 동원된 중고생은 총 4,701명. “PD수첩”은 45년간 드러나지 않았던 그 비극의 실상을 추적했다.
소년들은 선생님의 권유로 버스에 올랐다. 도착한 곳은 경주나 아산 등 전국 9곳의 수련원. 하지만 버스 문이 열리는 순간 소년들을 맞이한 건 군인들의 폭언과 매질이었다.
소년들은 열흘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유격이나 제식, 공수 훈련 등 80년대 삼청교육대의 악명 높은 특수훈련을 수행해야 했다. 고된 훈련을 견디지 못해 자해를 시도하거나, 어리거나 몸집이 작다는 이유로 교관에게 성폭행 피해를 입은 소년들도 있었다. “PD수첩”이 만난 피해자들은 45년이 흐른 지금도 당시의 충격으로 환청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있었다.
1981년 정부는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순화교육' 대상 인원을 강제 할당했다. 문교부(현 교육부)는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학생이 추후 사고를 낼 경우 담임과 학교장을 문책하겠다며 '불량 학생' 선발을 압박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제비뽑기로 대상자를 지정하거나 학생끼리 서로를 고발하게 만드는 반교육적인 방식마저 동원됐고, 특히 집안 형편이 어렵거나 편부모 가정 등 항의할 힘이 없던 소년들이 주요 표적이 됐다.
이런 대규모 징집의 이면에는 전두환 군부의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었다. 1980년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의 일환으로 삼청교육대를 세웠던 군부는 그 대상을 중고생으로 확장했다. 당시 광주를 기점으로 확산되던 민주화 운동의 열기를 잠재우기 위한 목적이었다. 실제 “PD수첩”이 만난 한 피해자는 5.18 민주화 운동 참여 이력 때문에 따로 불려가 곡괭이 자루로 폭행당했다고 증언했다. 이는 단순히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격리'를 넘어, '정권에 저항하면 학생이라도 예외없이 처단하겠다'는 잔혹한 경고였다. 평범한 소년들에게 ‘불량 학생’이라는 오명을 씌워 민주화 운동의 확산을 원천 차단하고자 했던 전두환 군부의 추악한 폭력을 고발한다.
퇴소 후, 소년들을 기다린 건 '불량학생'이라는 낙인이었다. 정상적인 학업과 취업의 기회에서 배제된 채, 이들은 국가 폭력의 피해를 개인의 수치로 여기며 45년간 과거를 숨긴채 살아왔다. '절대 발설하지 말라'던 군인들의 협박은 소년들에게 거역할 수 없는 공포였고, 사회 또한 이것이 국가의 잘못이라 알려주지 않았다. 확인된 피해자가 4,701명에 달함에도 이 비극이 40여년 동안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다.
마침내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를 계기로 피해자들이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용기를 내 세상의 문을 두드린 이들에게 사법부의 판단은 냉정했다. 법원은 학교에도 책임이 있다는 점, 그리고 당시 피해자가 학생 신분이었다는 점을 들어 배상금을 하루 10만 원씩, 총 100만 원으로 책정했다. 소년의 꿈과 미래를 앗아간 트라우마에 대한 고려 없이, 강제 수용되었던 '열흘의 시간'만을 기계적으로 환산한 결과였다. 45년의 고통을 고작 '열흘'로 갈음한 판결 앞에, 피해자는 삶 전체가 부정당하는 듯한 참담함을 느껴야 했다. 그들에게 '100만 원'은 보상이 아닌, 평생의 무게를 헐값으로 매겨버린 또 다른 폭력이었다.
소년은 어느덧 노인이 됐고, 당시 가해자들은 세상을 떠나고 있다. 국가가 설계하고 학교가 방조한 폭력 앞에 한 인간의 삶은 무엇으로 보상받아야 할까. 이제 45년간 사과를 기다려온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답할 시간이다.
“PD수첩” ‘잊혀진 소년들, 1981 중고생 삼청교육대’ 편은 5월 5일 밤 10시 20분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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