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에서 100세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이재숙(74) 씨. 남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올케의 짐을 덜어주고자 어머니 김인수 씨를 모셔 와 함께 한 지도 어느덧 12년째다. 1925년에 태어나셨으니, 올해로 딱 100세. 아무리 요즘 세상이 백세시대라고들 하지만 일제시대 소학교 시절부터 도합 쉰이 넘어가는 자손들 얘기까지 줄줄이 꿰고 계실 만큼 정신이 맑은 백 세 노인은 흔치 않다.
경제력 부족한 남편을 대신해 오랜 시간 부산 국제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며 6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켰던 어머니. 백 세까지 살아내는 동안 남편은 물론이요, 네 아들 중 셋을 앞세웠으니 그 속이 오죽할까. 그래도 큰 내색 없이 품 넓고 올곧은 성품으로 남은 자식들과 손주들의 기둥 역할을 해오셨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가 4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다행히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 큰 부작용은 없지만, 워낙 고령에 병마를 만나다 보니 기력이 쇠해 바깥 거동이 어려워지셨다. 그것이 늘 안타까웠던 딸 재숙 씨. 남편 자식 앞세운 마당에 백 세 잔치는 못 한다며 한사코 마다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재숙 씨는 잔치 대신 어머니와 함께 캠핑카를 빌려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답답한 침대를 벗어나 너무도 예쁜 이 봄을 만끽하며 어떻게들 사는지 늘 그립고 궁금했던 이들을 만나보는 여행. 꽃 따라 길 따라 100세 어머니와 함께한 인생 여행에 인간극장이 동행해 본다.
올해 나이 일흔넷이면 적지 않은 나이지만 재숙 씨는 누구보다 몸이 재다. 수시로 호출하시는 어머니께 달려가느라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을 겨를이 없다. 손아래 남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등진 후 어머니를 모셔 온 지도 벌써 12년째. 오전에 잠시 어머니를 돌봐줄 요양보호사가 오면 재숙 씨는 출근을 서두른다.
6남매 중 둘째이자 맏딸인 재숙 씬 일찍 철이 들었다. 명문 부산여중을 3년 장학생으로 다녔지만, 동생들 공부시키려 여상에 진학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보험설계사로 33년을 근무하고 은퇴한 후엔 미리 따둔 공인중개사 자격증으로 집 근처에 부동산을 열었다. 공부 못한 한을 풀겠다며 늘그막에 대학 공부를 시작해 나이 일흔에 기어이 학사모까지 썼던 재숙 씨. 지금도 변해가는 세상에 발맞추기 위해 AI 강의를 들으며 쉼 없이 공부 중이다. 머리 좋고 성실하고 생활력 강한 재숙 씨는 어머니를 꼭 닮았다.
경남 밀양의 전쟁도 피해 갈 정도로 깊은 촌마을에서 태어나, 일제시대에 소학교를 다닌 어머닌 어릴 때부터 머리가 비상하고 이치에 밝았다. 열여섯에 결혼한 남편, 재숙 씨의 아버진 경제력이 좋지 못해서 어머닌 6남매를 먹이고 공부시키기 위해 부산으로 삶터를 옮겼다. 국제시장 한편에 좌판을 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명절이 오나 길바닥에서 번 돈으로 자식들을 건사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집 저집 도움이 필요하다면 어머니 손길이 뻗치지 않는 곳이 없었고 여력이 없으면 반찬이라도 해서 부쳐야 속이 시원한 양반이었다. 그렇게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었던 어머니였다.
네 아들 중 셋이 당신보다 먼저 세상을 등졌다. 큰아들은 뇌졸중으로, 셋째아들과 막내아들은 암으로 어머니 곁을 떠났다. 그런 어머니의 시간들을 알고 있기에 재숙 씨는 지금 집안에만 갇혀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더 안타깝고 안쓰럽다.
어머니의 100세 생신을 맞이해 처음엔 근사한 잔치를 계획했다. 하지만 남편 자식 앞세운 사람이 무슨 염치로 잔치하느냐는 어머니 성화에 아쉽지만, 마음을 접었다. 대신 생각해 낸 것이 바로 100세 기념 여행. 아름다운 이 봄, 캠핑카를 타고 유람을 다니며 꽃놀이도 하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일가붙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들여다보기로 했다. 캠핑카 운전사이자 도우미로는 재숙 씨의 큰아들이자 어머니의 맏손자인 조동현(50) 씨가 합류해 어쩌다 보니 3대가 함께하는 여행이 됐다. 통영의 다섯째 딸, 진천에 사는 넷째 아들, 밀양의 고향마을과 선산, 먼저 간 아들이 있는 봉안당, 그리고 오랜 시간 장사를 했던 국제시장까지... 어머니의 백 세 인생을 돌아보는 대서사시가 된 이번 여행. 꽃 따라 길 따라 떠난 100세 어머니와 74세 딸의 따뜻한 여행을 따라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