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푸르름을 먹습니다” 동해 바닷길에서 만난 희망

  • 2025.11.19 13:43
  • 2시간전
  • KBS

파도와 바람이 넘실대는 고장, 영덕. 영덕의 진귀한 보물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푸르름과 동행하며 만난 풍성한 맛과 바다를 닮은 사람들을 만난다.

청명한 하늘과 맞닿은 드넓은 바다,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푸르름의 고장 영덕.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블루로드를 한없이 걷다 보면 이곳의 맑음을 절로 깨닫게 된다. 여름철에는 고래불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겨울이 되면 대게 거리에서 다양한 대게 요리를 맛볼 수 있어 휴가철 여행객들이 모이는 곳. 그러나 영덕의 진짜 보물은 ‘덕이 가득 찼다’는 지명의 뜻을 닮은 맑은 마음의 사람들이다. 그리고 대게에 가려진 싱싱한 식재료들 역시 고향 사랑을 북돋우는 영덕의 보배다.

지난봄 대형 산불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도 영덕의 넉넉한 품 덕분이다. 가을을 맞은 산에서는 송이버섯이 고개를 내밀고 바다에서는 살이 오른 가자미와 백골뱅이, 그리고 귀한 무늬오징어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 에서는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영덕의 숨은 진주를 찾아 떠난다.

본격적인 대게 철이 시작되기 전,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두 여인이 있다. 영덕에서 나고 자란 김갑출(77세) 씨와 그의 동서인 김영옥(54세) 씨다. 두 사람이 바삐 움직이는 건 영덕 서민들의 밥상에 빠지지 않았던 가자미를 건조하기 위함인데. 가자미는 사시사철 영덕 바다에서 볼 수 있지만 지금 이 시기가 살이 올라 특히 맛이 좋다고 한다.

꾸덕꾸덕하게 마른 가자미는 ‘가자미식해’로 제격이다. 쌀이 귀했던 옛날에는 좁쌀로 만들어 먹었다. 이제는 별미가 되어버린 좁쌀가자미식해. 어린 시절 가자미식해를 매일 같이 먹었다는 최수종 배우는 갑출 씨의 가자미식해 한 조각에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 영덕의 바다가 품은 또 다른 보물은 해방풍나물.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자라기에 모래사장을 푸르름으로 물들인다. 가자미와 함께 매콤하게 무쳐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라는데. 영덕 바다가 선물하는 가을 가자미 밥상을 만난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에 선착장을 떠나는 배 한 척이 있다. 바로 무늬오징어를 잡기 위해 바닷길을 떠나는 것! 무늬오징어는 몇 해 전부터 동해안 바다에서 모습을 드러낸 영덕의 떠오르는 보물이다. 일반 오징어에 비해 몸집이 세 배나 큰 무늬오징어는 이름에 걸맞게 몸통에 호피무늬가 있다. 게다가 환경에 따라 색상도 검게 혹은 밝게 변한다. 수온이 더 낮아지면 잡을 수 없어 이 시기가 되면 전국의 낚시꾼들이 서둘러 낚시 장비를 챙겨 영덕으로 향한다.

가을이 되면 살이 통통하게 올라 사계절 중 가장 맛이 좋아지는 무늬오징어. 어려움 끝에 얻은 무늬오징어 회 한 접시는 밤낚시의 결실이자 낚시꾼들의 낭만이다. 그러나 무늬오징어 배의 선장인 김도수(47세) 씨가 추천하는 요리는 ‘무늬오징어두루치기’와 ‘무늬오징어숙회’이다. 매콤달콤하게 볶은 고기와 두툼한 무늬오징어를 한입 가득 넣으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옛날부터 물이 맑고 모래 찰흙이 많아 옹기장이들이 모여 살았던 영덕군 지품면. 과거에는 10여 개가 넘는 전통 옹기가마가 있는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단 한 곳만이 그 세월을 잇고 있다. 백광훈(76세) 씨와 백민규(44세) 씨 부자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영덕 옹기의 맥을 지키는 주역들이다. 옹기 작업 중 가장 고된 시기는 1년에 한 번, 모든 옹기를 보름 동안 구울 때다. 불의 세기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쪽잠을 자며 가마를 지킨다.

그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광훈 씨의 아내 박옥난(71세) 씨와 며느리 박지영(42세) 씨는 고생한 그들을 위해 보양식 한 상을 준비한다. 가을 보양 밥상의 메뉴는 송이버섯 탕국. 향긋한 송이 향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송이를 살짝만 익혀야 한다. 옆에서는 아들 민규 씨가 아이디어를 내 개발한 옹기 화덕에서 통삼겹살을 굽는다. 옹기 입구에 통삼겹살을 걸어 뜨거운 숯불에 구워내면 기름기가 쏙 빠져 감탄이 절로 나오는 맛의 완성이다. 옹기를 빚고 행복을 짓는 이 가족의 따뜻한 밥상을 만난다.

거센 파도가 쉼 없이 들이치고, 바다의 암석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자리 잡은 곳. 영덕군 영덕읍의 석리마을은 집들이 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보여 ‘따개비마을’이라고 불린다. 이곳의 자랑은 푸른 미역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토산품으로 기록될 정도로 미역이 유명한 마을인데, 들이치는 파도를 이겨내고 자란 미역이라 품질이 특히 우수하다.

함께 미역 작업을 하며 두터운 이웃의 정을 쌓아 온 석리마을. 지난 3월에 발생했던 대형 산불의 흉터가 아직도 남아있다. 온 하늘을 검게 뒤덮은 산불이 삶의 터전을 모두 앗아갔는데. 마을 이웃들은 이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 함께 식사를 나누며 서로를 다독인다. 마을의 대표 요리사는 현역 해녀인 전정영(82세) 씨. 오늘의 행복 밥상은 ‘깐데기’라고 부르는 쌀수제비를 넣은 따개비 미역국과 백골뱅이 초무침이다. 바다가 내어준 귀한 식재료에 전정영 어르신의 손맛이 더해졌다는 소식에 삼삼오오 모여드는 마을 사람들. 따닥따닥 붙어 자라는 따개비보다 더 끈끈한 이곳의 행복 밥상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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