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오디·순무·닥나무잎까지 김치로? 한여름 시원한 아삭함을 담은 김치의 세계

  • 2026.06.17 09:39
  • 2시간전
  • KBS

배추김치의 공백을 채워 줄 아삭아삭 시원한 여름 김치를 소개한다.

한국인의 정체성이자 한식의 뿌리인 김치. 하지만 여름철이 되면 김장김치는 시큼해지고, 배추는 물러져 제맛을 잃고 만다. 하지만 우리의 밥상에서 단 한 순간도 김치가 사라진 적은 없다. 김치 백과사전에 등록된 김치 수만도 2,400여 가지. 여기에는 무더위를 슬기롭게 이겨내고자 했던 어머니들의 놀라운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번 에서는 뜨거운 여름날, 얼음처럼 시원하고 개운하게 밥상을 지켜주었던 다채로운 여름 김치를 조명하고자 한다.

나지막한 산자락의 품에 안긴 풍요의 땅, 충청남도 부여. 이곳에서 오디 농사를 짓는 유정현(62세), 김경숙(62세) 부부는 이맘때면 온 동네를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새콤달콤한 오디로 아주 특별한 김치를 담근다.

진하게 우려낸 뽕나무 물에 탐스러운 오디와 달콤한 과일즙을 넉넉히 더해 담그는 '오디 백김치'는 한여름 갈증을 단숨에 물리치는 최고의 청량제다. 어디 그뿐일까. 여름 들판의 생명력을 가득 머금은 아삭한 돌나물에 앵두와 오디를 띄워낸 '돌나물 물김치', 여기에 은은한 향을 품은 뽕잎에 오디를 더해 버무려낸 '뽕잎김치'까지, 그야말로 여름이라서 더 풍성한 김치 한 상이 차려진다.

특히 아삭아삭한 뽕잎 김치 위에 겉은 검고 속은 뽀얀 '오디 수육' 한 점을 얹어 싸 먹으면, 무더위에 잃어버렸던 입맛도 단숨에 되돌아온다. 새콤달콤하게 익어가는 오디처럼, 저마다의 인생이 맛있게 버무려진 부여의 여름 밥상을 만나러 간다.

한강과 서해의 물길이 만들어낸 천혜의 섬, 강화도. 매년 6월이면 갯벌 흙과 해풍이 키워낸 강화의 명물, 순무의 첫 수확이 시작된다. 강화도의 밥상에 사시사철 빠지지 않는 순무라지만 계절에 따라 그 맛은 천지 차이다. 가을 순무가 맵싸하면서도 단단한 매력이 있다면, 봄볕을 받고 자란 봄 순무는 식감이 부드럽고 시원한 단맛이 진하다.

33년 전 강화도로 귀촌해 순무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최월숙 씨(62세). 그녀의 손끝을 거치면 순무 하나로도 다채로운 김치들이 탄생한다. 순무에 물고기 비늘처럼 촘촘히 칼집을 넣어 속을 채운 '순무 비늘김치'는 과거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즐겨 먹던 귀한 별미였고, 순무가 한창 자랄 때 솎아 낸 어린 순무로 버무린 '어린순무김치는 이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선물이다. 여기에 잘 익은 밴댕이 섞박지 국물에 소면을 삶아 말아낸 '순무김치말이국수' 한 그릇이면 한여름 무더위쯤은 단숨에 잊힌다. 갖가지 순무 김치에 제철을 맞은 밴댕이 회무침과 순무 시래기밥을 더해 차려 낸 한 상, 바다와 땅이 맞닿은 이곳 강화에서만 만날 수 있는 소박한 여름 밥상을 만나러 간다

산과 물이 태극무늬처럼 감싸안은 태화산 자락. 그 품에 천년 고찰인 마곡사가 있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조차 마음을 닦는 수행의 일부라 여기는 불가, 사찰 음식의 기본 중의 기본은 바로 김치다. 그중에서도 늦가을에 담근 김장김치는 1년 살림을 책임지는 절의 소중한 재산과도 같다. 김장김치가 푹 익어 무르기 시작하는 여름이면, 시어 버린 묵은지를 깨끗이 씻어 다진 두부와 채소로 속을 채운 '묵은지두부말이'를 만든다. 시원한 국수 한 그릇에 곁들이면 무더위를 달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궁합이 없단다.

이렇듯 묵은지로 지혜롭게 여름을 나기도 하지만, 오직 이 계절에만 허락된 특별한 여름 김치들도 있다. 파와 마늘 등 오신채(五辛菜)를 금하는 불가의 예법에 따라 소금과 설탕, 배즙으로만 간을 해 오이 본연의 청량함을 살린 '오이소박이', 젓갈 대신 진한 채수와 국간장으로 깊은 감칠맛을 낸 '닥나무잎 김치', 그리고 뿌리부터 잎, 꽃까지 버릴 것 하나 없다는 '달맞이 김치'까지. 산과 들에 돋아난 푸른 생명들이 모두 귀한 김치의 재료가 된다.

자연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의 의미가 깃든 사찰의 여름 김치. 구도자의 철학과 삶이 향기롭게 녹아있는 사찰의 여름 밥상을 통해, 지친 몸을 채우는 비움과 마음의 평온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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