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헌신한 이들을 기리는 공간인 ‘국립묘지’. 그러나 12?12 군사 반란과 5?18 광주 유혈진압에 책임이 있는 상당수가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5?18 당시 시민을 향한 첫 발포자, 시민 학살을 공적으로 내세웠던 당시 20사단장 박준병. 유혈진압을 주도한 소준열. 유혈진압 책임 라인에 있던 지휘관들 상당수가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또한, 군사정권 시절 혹독한 고문 수사로 무고한 민간인들을 간첩으로 둔갑시켰던 국가 폭력의 가해자들도 상당수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걸로 확인됐다. 더 큰 문제는 현행법대로라면 앞으로도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국가 폭력의 가해자들이 사후에 국립묘지에 안장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트레이트는 현행 국립묘지 안장 기준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그리고 역사적 평가 등과 무관하게 이뤄지는 안장 심사 제도를 집중 취재했다.
6?25 전쟁 당시 흰 무명옷을 입고 지게에 탄약과 식량을 싣고 밤낮없이 산악지대를 올랐던 사람들. 6?25 전쟁의 숨은 영웅으로 불리는 이른바 ‘지게 부대’. 수많은 이들이 전쟁터에서 희생됐지만 군번이나 계급장 없이 참전했던 탓에 주목받지 못하고 기억에서 잊혀왔다. 국내엔 이들에 대한 자료 역시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스트레이트는 미 육군 군사사센터에 정보공개를 통해 ‘지게 부대’와 관련된 중요한 기록을 확보했다. 아울러 수소문 끝에 ‘지게 부대’로 참전했다는 이들을 만나 ‘지게 부대’의 실체를 취재했다. 한국전쟁 당시 약 30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노무자들인 ‘지게 부대’. 76년이 지난 지금. 그러나 이들이 전쟁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줄 공식적인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스트레이트는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서 일했지만, 국가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이들의 삶을 살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