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수에즈 운하를 통한 항로다. 그러나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생겼다. 바로 북극항로다. 거리는 3분의 2로 줄고, 항해 시간은 10일 이상 단축된다.
전 세계 강대국들이 이 새로운 바닷길에 주목하고 있다. 북극해 해안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러시아는 강력한 통제권을 주장하고, 미국은 군사·경제의 핵심 거점이 될 그린란드를 노린다. 중국은 '빙상 실크로드'를 선언하며 미래 무역로 장악을 꿈꾼다.
얼음이 사라진 자리에 새롭게 떠오르는 세계 질서는 어떤 모습일까? 북극해권 국가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핀란드를 직접 방문해 북극항로를 둘러싼 새로운 글로벌 게임의 현장을 담았다.
화산과 빙하가 만들어낸 땅, 아이슬란드. 북극항로와 대서양 항로가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한 이곳은 기후변화의 최전선에서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닥뜨리고 있다. 아이슬란드를 상징하는 거대한 얼음의 왕국, 바트나요쿨 국립공원을 찾았다. 수천 년 동안 쌓이고, 녹고, 다시 얼어온 빙하는 점점 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19세기 말 이후 아이슬란드는 빙하 체적의 약 16%를 잃었으며, 그 손실량은 해수면을 약 1mm 상승시킬 만한 규모다.
그러나 이 변화는 아이슬란드에 기회이기도 하다. 북극항로가 열리면 관광산업 의존도가 큰 이곳에 훨씬 더 많은 배와 사람이 드나들 수 있다.
1960년대 냉전기에 만들어진 비밀 군사 기지, 레이탄 지하 벙커. 취재팀은 최초로 레이탄 지하 벙커 촬영에 성공했다. 노르웨이와 북극권 국가들의 집단방위 군사동맹 나토의 방위 전략이 실시간으로 지휘가 이루어지는 현장이다.
노르웨이는 북대서양과 북극해를 연결하는 전략적 거점으로, 북극권 국가들은 과거 냉전 시기부터 노르웨이를 '북부 전선의 수호자'로 불렀다.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마주하는 북극해권의 최전선이기 때문. 북극해의 얼음이 녹아내리자, 그 밑에 숨어 있던 나토와 러시아의 경계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07년, 유인 심해잠수정이 북극해 해저에 러시아 국기를 꽂았 다.
2021년에는 핵추진 잠수함 3척이 두께 1.5m의 얼음을 동시에 뚫고 수면 위로 부상하는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극한의 북극 기상 조건을 이겨내는 러시아군의 힘을 과시한 것이다.
나토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노르웨이는 격년마다 최대 규모 혹한기 훈련인 '합동 바이킹 훈련'을 실시하는데, 2022년에는 냉전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나토 대규모 연합 훈련인 '노르딕 대응 훈련'도 러시아 인접 지역에서 진행한다. 러시아에 대한 견제 메시지이자 동맹 내부의 준비 태세를 드러내는 것.
핀란드는 100년 이상 쇄빙 기술을 선도해 온 나라다. 전 세계 쇄빙선 프로젝트의 50% 이상에 관여하고 있는 핵심 기업 아케르 아틱을 찾았다.
세계적으로 쇄빙선을 보유한 나라는 많지 않다. 하지만 북극항로가 열리면서 쇄빙선 확보 경쟁도 치열해졌다. 러시아는 최다 쇄빙선 보유국이자 세계 유일 핵쇄빙선 운영국이며, 중국이 쇄빙선으로 해상 무역 장악에 나서면서 캐나다와 미국도 최근 추가 건조를 발표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의 쇄빙선 기술력이다.
한국은 2014년 러시아 야말반도 LNG 프로젝트를 위한 쇄빙 LNG 운반선 15척을 수주해 세계 최초의 상업용 쇄빙 LNG선 시대를 열었다. 또한 2029년 인도 예정인 차세대 쇄빙선은 친환경 LNG 2중 연료를 적용해 세계 최대 선박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한국의 다목적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의 극지 해저 연구, 극지연구소 원격 탐사 빙권 정보센터가 수집한 데이터도 쇄빙선 설계 단계부터 제조, 운용까지 전 과정을 뒷받침한다.
북극항로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새로운 관문이 될 가능성을 엿보는 지금,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한국은 조선과 물류, 해양 산업이 집약된 도시 부산에 주목하고 있다.
다큐 인사이트 은 2025년 11월 6일 목요일 밤 10시 KBS 1TV에서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