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힘내라, 헬스보이

  • 2025.12.19 17:03
  • 3시간전
  • KBS

낮은 돌담 너머로 귤이 익어가는 제주 시내의 한 단독 주택. 원광윤(33) 씨는 요즘 두 돌을 앞둔 딸 서아(2)의 등원 준비로 분주하다. 원래라면 헬스장의 관장으로 자리를 지켜야 할 시간이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광윤 씨는 대학에 다니다 운동에 빠져 그 길로 헬스 트레이너가 됐다. 서울에서 잘나가는 트레이너로 생활하다 코로나19 때 고향인 제주로 내려왔다. 남의 건강을 지켜주며 보람을 느꼈던 헬스 트레이너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던 그에게 어느 날 제동이 걸렸다.

바로 머리에 암이 발견된 것이다. 무더웠던 지난 8월, 갑자기 시작된 발작 증세는 점점 심해지며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발작의 원인은 신경교종의 일종인 악성 뇌종양이었다. 워낙 위급한 상황에 한 달 만에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이 잘되어도 왼쪽 팔다리는 마비 증상이 있을 거라고 했다. 한두 달은 누워 있을 거라는 병원 측의 이야기와 달리 광윤 씨는 수술 후 열흘 만에 걷기 시작했고, 기적 같은 회복이었다. 수술받은 지 이제 3개월 차. 조금만 피곤해도 왼쪽 팔다리에 힘이 빠져 안심할 수 없다. 혹시나 재발하는 건 아닐까 두렵다.

재활 중인 남편과 두 살배기 딸을 돌봐야 하는 아내 오수빈(35) 씨의 하루는 길다. 헬스장 오픈 시간에 맞춰 출근하려면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한다. 수업하랴, 재활 중인 남편과 두 살배기 딸까지 돌봐야 하니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수업이 비는 시간 틈틈이 운동하며 체력을 키운다. 수빈 씨 역시 운동의 매력에 빠져 속옷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버리고, 트레이너가 됐다. 3년 전, 같은 회사 트레이너로 만난 두 사람은 연애 3개월 만에 양가 허락하에 동거를 시작했고, 서아가 생기자 바로 혼인신고를 하고 부부가 됐다.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직접 헬스장을 열어보자며 1:1 PT샵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은 회원 수가 300명에 가까운 인기 헬스장으로 성장했다. 사업이 승승장구하자 부부는 젊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쉴 생각에 밤낮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사랑도, 사업도 뻥 뚫린 고속도로를 탄 듯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런 부부에게 지금 닥친 위기는 마치 인생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가르쳐주려는 듯하다.

3개의 헬스장을 운영하며 쉴 새 없이 달리던 부부는 광윤 씨가 건강을 되찾을 때까지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헬스장 두 곳은 정리했고, 현재 운영 중인 헬스장도 곧 인수인계에 들어간다. 광윤 씨는 인생의 전부이자, 무대였던 헬스장을 넘기려니 안타깝고 서운하다. 부모의 사랑과 손길이 한창 필요한 서아에게 정성을 쏟으려 하지만 육아는 마음처럼 쉽지 않다. 서귀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광윤 씨 부모님이 때때로 힘을 보태주고, 곁에서 재활 운동도 직접 챙겨주는 수빈 씨,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서아가 있기에 광윤 씨는 다시 힘을 낸다. 그런 광윤 씨를 응원하듯 선물 같은 일이 찾아오고, 짧은 연애 이후 꿈도 꾸지 못했던 데이트도 하며 추억을 하나씩 쌓는 중이다. 뜻하지 않게 주어진 이 시간을 함께 이겨내는 중인 광윤 씨와 수빈 씨. 치열하게 살아온 지난날을 뒤로하고, 다시 일어서려는 헬스보이. 그가 걸어 나갈 새로운 발걸음을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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