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강원도 고성 최북단, ‘멀미하는 해녀’ 조단비 이야기

  • 2025.03.07 14:58
  • 2개월전
  • KBS

강원도 북쪽 끝, 대진항. 평균 나이 70세인 해녀들 사이에 올해로 물질 4년 차가 된 막내 해녀, 조단비(34) 씨가 있다. 거침없이 물속으로 몸을 던지는 해녀들과 달리 테왁을 가슴에 품고 한참을 머뭇거리는 단비 씨. 멀미가 심해 물질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멀미약을 챙겨 먹어야 하고, 얼마 전까지는 혼자 고무 옷을 입고 벗지도 못했다. 모든 것을 선배 해녀들의 도움을 받는다는 단비 씨. 게다가 숨은 깊지만, 수영 실력도 부족해 한 번 물에 빠지면 멀리 가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오만 것들을 다 훑어온다고 해서 별명도 ‘오만가지 해녀’다.

스포츠 세계와 비슷한 해녀 세계. 물속에서는 모두가 경쟁자라는데. 하지만, 단비 씨는 몸도 손도 느리고, 물에서는 더 굼뜨다 보니 오히려, 선배 해녀들의 걱정을 한몸에 받았다는데. 실력 없는 단비 씨에겐 견제는커녕, 선배 해녀끼리 왜 단비에게 더 잘해주지 않냐며 서로 다투는 일까지 있었다. 대진항 막내 해녀 단비 씨의 어리숙함은 낯선 이를 잘 받아주지 않는 해녀 세계에 정착하는 데에 큰 장점이 되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단비 씨.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고성에 와 해녀가 된 이유도 남다르다. 졸업 후, 예술가들과 다양한 문화,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했던 그녀. 일은 즐거웠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예술가를 상대하다 보니 답답함이 컸다. 그럴 때마다 달려간 바다. 수경 너머 보이는 바닷속 세상은 투명함 그 자체였다. 숨김없이 모든 걸 보여주는 바다의 매력에 제주도, 거제도 어촌계를 부지런히 찾아다녔지만, 단비 씨를 두 팔 벌려 환영해 준 곳은 고성의 해녀 이모들이었다.

이런 단비 씨를 따라 남편 홍준 씨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문어 잡는 배의 선장이 됐다. 동갑내기인 부부인 두 사람. 같은 바다에서 일하다 보니 매일 저녁, 누가 더 많이 벌었는지 수확량을 비교하며 수익이 많은 사람이 그날의 가장이 된다. 가장이 된 사람은 두 아이의 육아와 집안일에서 해방이 된다는데. 서울에서 각자 직장 생활을 하며 아이를 키울 때보다 바다를 터전 삼아 사는 지금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는 부부.

티격태격, 아니 티키타카가 절묘하게 합을 이루는 부부지만, 사실 첫 아이, 나은(7) 이를 낳고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다 단비 씨가 무작정 ‘해녀’를 하겠다며, 혼자 고성으로 갔다. 물질하며 바다의 품에서 마음이 확 풀렸다는 단비 씨는 “내가 다 먹여 살릴 테니, 고성에서 같이 살자”며 남편, 홍준 씨를 불렀다. 그렇게 ‘부부의 위기’도 큰 파도를 넘겼다.

단비 씨의 소원은 하나다. 해녀 이모들과 오래오래 건강하게 물질을 하는 것, 그리고 가족과 지금처럼 행복하게 지내는 것. 똑같아 보여도 매일 다른 바람과 파도가 치는 바다처럼, 날마다 다른 빛깔의 행복을 건져 올리는 단비 씨의 바다를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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