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60분> 과로사회 – 일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

  • 2025.08.08 13:50
  • 8시간전
  • KBS

최근 주 4.5일제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며 근로 시간 단축을 향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법정근로시간 단축 논의는 2018년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8년 만이다. 우리나라는 ‘과로 사회’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일까. 은 근로 시간 규정의 사각지대에서 고된 노동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을 만나봤다. 극한 노동 속에서 시시때때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 그들의 일상을 밀착 취재했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졌던 지난 7월, 택배 기사 3명이 잇따라 사망했다. 체감온도 40도를 넘는 극한의 더위 속에서도 기사들은 배송 물량을 줄이지 못한다. 수입 유지를 위해서는 물량을 오히려 늘려야 하는 구조다. 폭염을 견디며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하는 택배기사에게 편두통과 어지러움은 일상이고, 주머니에는 포도당 보충제와 타이레놀이 항상 챙겨져 있다. 생계유지를 위해 이들에게 과로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쿠팡 퀵플렉스 기사로 일하고 있는 이송범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야간 배송 작업의 마감 시간, 오전 7시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급해진다. 마감보다 늦으면 재계약에 지장이 생기기에 달리고 계단을 뛰어오르며 배송하게 된다. 여러 회차의 반복 배송 시스템에 하루 동안 한 가구에 세 번씩 방문하는 일도 허다하다. 그를 둘러싼 노동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져만 간다.

‘어제 쿠팡보다 나은 쿠팡은 없다.’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우리 주변에는 생계를 위해 두세 개의 직업을 병행하는 이들도 많다. 현재 투잡을 뛰고 있다는 이동주 씨. 토요일은 그가 24시간을 연속으로 일하는 날이다. 공장 근무에서 퇴근하자마자 다음 근무지인 편의점으로 이동해 16시간을 더 일한다. 일하다가 심장이 떨려 ‘이러다 죽으면 어떡하지’ 생각하면서도, 당장이라도 일자리 하나를 더 구해 ‘쓰리잡’을 하고 싶다는 동주 씨. 아픈 부모님의 병원비와 생활비, 자격증 준비 등 매달 나가는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처럼 일과 삶의 균형을 챙겨가며 일할 수 없다.

“그만두고 싶은데 그만두면 안 됩니다. 지금 당장은”

웹툰 작가는 과로 직군으로 분류된다. 단가가 낮아 생활비를 충당하려면 작품을 세 개씩은 해야 하고, 주 80시간 노동을 자처할 수밖에 없다. 과도한 업무량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 정신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는 작가들도 많다. 아파도 작업실을 떠날 수 없는 과중한 노동 환경은 웹툰 작가를 더욱 병들게 한다.

이민정(가명) 씨의 오빠는 지난 2019년 퇴사를 몇 주 앞두고 가족들의 곁을 떠났다. 과도한 업무량으로 힘들다는 말을 가족들에게 전한 것도 수차례. 육체적, 감정적으로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그는 ‘죽어서라도 자유롭게 여행 다니고 싶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과로로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은 또 있었다. 장향미 씨는 떠난 동생의 과로를 입증하기 위해 긴 시간 싸워왔다. 오랜 싸움 끝에 회사의 사과를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여전히 과로 환경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우리 사회에서 동생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서다.

연이은 과로로 여러 정신과적 증상을 겪고 있는 유희지(가명) 씨도 간단히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 ‘내가 잘못 살고 있나’라고 스스로에게 되묻는 날들이 많아졌다. 실제로 과로가 뇌 구조를 바꿔 인지기능뿐만 아니라 정서 기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가 최근 발표됐다. 중앙대 의과대학 예방의학 교실 이완형 교수 연구에 따르면, 과로한 집단의 뇌를 과로하지 않은 집단의 뇌에 비해 인지 및 정서기능을 담당하는 뇌 부위의 부피와 활성화 정도가 현저히 증가했다. 우울·불안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패턴과 유사하다.

프랑스 노동법 학자 알랭 쉬피오는 노동시간과 고용 관계를 넘어, 노동자의 삶을 고려해 법과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근로 시간 규제 밖 노동자도 일뿐만 아니라 여가와 양육, 정치참여, 봉사활동 등을 하며 살 수 있도록 적정 임금과 복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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