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시에 위치한 어느 오래된 빌라. 그곳에는 하루가 온통 할머니와 아빠로 가득 찬 희진이(14)와 희정이(12) 자매가 있다. 열심히 일하시는 할머니를 위해 손수 음식을 만들고 자전거를 타고 직접 배달까지 간다는 희자매는 늘 이렇게 말 대신 행동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곤 한다. 희자매가 이토록 할머니를 살뜰히 도와드리는 효손이 된 이유가 있다.
어릴 적 엄마와 아빠의 이혼 이후 자매의 엄마가 되어주었던 사람은 다름 아닌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자매와 아빠가 사는 집과 할아버지가 계신 할머니의 집 양쪽을 오가며 가족들을 돌봐 오셨다. 오랜 노동으로 지쳐있던 어깨가 고장 나 지난해 왼쪽 어깨를 수술하신 할머니. 할머니가 병원에 계신 동안 희자매는 할머니의 빈자리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는데. 할머니 대신 집안일을 하며, 그동안 이 힘들고 수고스러운 일을 할머니 혼자 해 오셨다는 걸 새삼 느끼며 할머니께 고맙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는 희자매. 그중에서 둘째 희정이는 요리사라는 꿈을 이뤄서 할머니가 자신들을 돌봐줬던 것처럼 할머니를 보살펴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할머니 상연 씨(67)가 이렇게 아빠와 할아버지 집을 오가며 두 집 살림하게 된 데에는 조금 특별한 사연이 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할머니는 중매로 지금의 할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 할머니는 지적 장애를 갖고 있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할아버지를 돌보며 살았다. 희자매의 아빠 또한 태어났을 때부터 할아버지와 같은 지적 장애를 갖고 있었다. 이런 아들을 정성껏 키운 할머니 덕분에 결혼상담소의 소개로 캄보디아 출신의 엄마와 결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빠의 지적장애 때문에 결혼 생활 내내 힘들어했던 엄마. 똑같은 삶을 살았기에 며느리의 심정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결국 안타깝지만, 아들 내외의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게 되었다. 할머니는 이후 모든 가족의 생계와 집안일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살아왔다. 아빠는 할머니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보니 할머니는 늘 아이들 걱정에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결혼하고 나서부터 가족들 모두가 할머니에게 의지하게 되었고,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하지만 할머니는 힘든 마음을 털어놓을 곳도 기댈 곳도 없이 홀로 그 모든 것을 견디며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의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희자매, 두 손녀였다.
지적 장애로 변변한 일을 할 수 없었던 할아버지 대신 할머니는 먹고 살기 위해 농사지을 땅이 필요했다. 하지만 집 한 칸, 땅 한 평 없었던 살림에 결국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그로부터 쭉 열심히 농사를 지어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조금씩 빚을 갚았다. 하지만 장성한 아들을 결혼시키기 위해선 결혼 자금이 필요했고, 변변치 않은 농사 수익으로는 그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또 은행에 빚을 지고 말았다.
병원에서는 몸이 성치 않은 할머니에게 일하지 말라고 하지만, 빚을 남기고 싶지 않은 할머니는 하루도 일을 쉴 수가 없다. 직접 짓는 밭농사와 논농사 외에도 감자밭이며 무밭 등 마을에 일손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할머니. 농사일만으로도 버거울 텐데 틈날 때마다 식당의 설거지 일까지 하러 다니신다. 할머니는 당장 몸이 힘든 것보다 행여 건강이 나빠져 일을 못 하게 되면 앞으로 남은 빚과 가족들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나 오로지 그 걱정뿐이다. 할머니는 애써 그 마음을 누르며 오늘도 가족들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이후 512회 ‘꿈꾸는 반지하방 소녀, 희진이’ (2025년 6월 28일 방송) 후기가 방송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