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피어라 선옥'...쉰 살에 손주가 셋, ‘젊은 할머니’의 역주행

  • 2025.09.05 16:10
  • 12시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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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복숭아를 따고,  낮에는 미용실로 출근하는 22년 차 원장님 선옥(50) 씨. 손님들은 대부분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다. 선옥 씨는 ‘동네 언니’들의 전담 미용사다.

선옥 씨네 미용실은 꼭 머리만 하러 오는 곳이 아니라는데, 날이 더우면 땀도 식히고, 재미난 동네 소식도 듣는 정겨운 사랑방이다. 손님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늘 화제의 중심은 선옥 씨! “이렇게 젊은데 할머니라고”, 집마다 자식들이 결혼 안 해서 걱정인데, 삼 남매 모두 출가시키고 나이 50에 벌써 손주가 셋으로 모두들 선옥 씨를 부러워한다. 

선옥 씨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고등학생 때 남편 영섭(55) 씨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당시 방위병으로 군대 생활을 하면서, 밤에는 택시 기사로 일했던 영섭 씨. 지역 축제 때 영섭 씨가 몰던 택시를 타게 된 것이 부부의 첫 만남이었다. 운전도 잘하는 ‘군인 오빠’에게 마음을 빼앗긴 여고생 선옥과 명랑한 여고생에게 자꾸만 마음이 갔던 청년 영섭. 

빠른 속도로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스무 살에 신혼을 시작했다. 스무 살에 엄마가 되고, 마흔 다섯엔 첫 손주를 안은 선옥 씨. 손주들에게 선옥 씨의 이름은 ‘옥천 할머니’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했는데, 선옥 씨는 할머니라는 호칭이 싫지 않단다.

“남편이 달라졌어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남편 칭찬을 하는 선옥 씨.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밥상을 들어주고 쌀을 씻어주는 등 아주 평범한 행동들이다. 영섭 씨로 말하자면, 남자가 주방에 들어오면 큰일 나는 줄 아는 그야말로 ‘옛날 남자’. 조부모님 밑에서 자라 유난히 가부장적인 영섭 씨. 하지만 요즘은 많이 나아진 편이라는데, 예전엔 밥 한번 혼자 차려 먹는 법이 없었고, 생일은 기억도 못 하기 일쑤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새댁과 유난히 보수적이었던 남편.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영섭 씨가 보증을 잘못 서면서, 옥천의 시댁 마을로 들어왔던 부부.  1년에 제사를 12번이나 지내며 매일 전쟁을 치렀단다.

그런데 영섭 씨가 몇 년 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삼 남매 출가시키고 보니, 두 사람이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게 됐다는 영섭 씨. 아내의 인생이 애틋하고 미안해졌단다. 그때부터 생전 안 챙기던 생일도 챙겨주고, 아내에게 조금씩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50번째 생일을 앞둔 선옥 씨. 올해는 영섭 씨가 또 어떤 선물을 안겨줄지 벌써 설레고 있다.

언제나처럼 들뜬 발걸음으로 미용실 문을 여는 선옥 씨. 미용실로 들어서는 순간이야말로 선옥 씨의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처음엔 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시작한 미용실이지만, 이제는 선옥 씨만의 아지트가 되었다.

그런 선옥 씨를 가장 응원하는 건, 다름 아닌 딸 혜은(31) 씨. 삼 남매 키우느라 고생한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 온 맏딸이기에 일을 즐기며 사는 엄마의 모습이 뿌듯하단다. 그리고 지금은 두 아이를 둔 엄마로서 더더욱 선옥 씨의 지난 세월이 대단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동네에서 ‘젊은 스타일을 해주는 미용실’로 통하면서 지역 미용 협회 구역장도 맡고 있는 ‘인싸’ 원장님 선옥 씨. 늦게 피어나는 꽃일수록 더 오래, 더욱 진한 향기를 품는다고 했던가. 스무 살에 피우지 못한 꽃이, 쉰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조금씩 피어나고 있다. 누군가의 아내도, 엄마도 아닌 ‘여자 김선옥’,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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