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고말선의 사랑

  • 2025.11.14 13:58
  • 3시간전
  • KBS

제주에 가을이 들면 분주해지는 사람이 있다. 가녀린 몸으로 오전엔 귤밭에서 귤을 따고, 오후엔 양봉장에서 벌을 챙기는 고말선(62) 씨. 올해는 키위밭까지 돌보느라 쉴 틈이 없지만, 다행히 든든한 지원군 남편 노창래(62) 씨가 곁에 있다.

두 사람은 12년 전 재혼으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사별 후 편찮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힘든 시간을 보내던 말선 씨와 이혼 후 가진 것 하나 없이 제주로 내려온 창래 씨. 농업인 교육을 받다가 서로를 알게 된 두 사람은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창래 씨가 짐을 싸 들고 느닷없이 말선 씨의 집을 찾아왔다. 제주에서 새 삶을 꾸리려 했지만, 좀처럼 숨구멍이 보이지 않던 시절. 창래 씨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말선 씨의 얼굴이었다. 그 절박한 모습이 본인과 닮아있어서인지 꼭 전 남편이 보내준 사람인 것 같았다는 말선 씨. 그렇게 말선 씨는 창래 씨를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함께 살아왔다.

지금은 어디를 가든 실과 바늘처럼 꼭 붙어 다니는 부부. 해마다 가을이 오면, 영탑이 있는 곳으로 제사를 지내러 간다. 정성스레 초에 불을 붙이고 함께 절을 올리는 두 사람. “지훈이 아버지, 올해도 우리 식구들 잘 부탁드려요”라며 아내의 전남편에게 절을 하는 창래 씨, 부부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웬일로 일복 대신 정갈한 한복을 차려입는 말선 씨. 절에서 천도재를 지내는 날이다. 말선 씨는 가슴에 위패를 안고, 신도들과 함께 법당 안을 돌며 기도를 올린다. 그녀의 마음에는 늘, 먼저 세상을 떠난 전 남편과 친정어머니가 자리하고 있다.

열아홉 살에 제주를 떠나 구미의 한 공장에서 일하던 말선 씨. 그곳에서 지훈 아빠를 만나 두 아들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20억이라는 큰 빚을 떠안게 됐다. 결국 말선 씨의 고향인 제주로 돌아와 작은 치킨집을 운영하며 다시 일어서려고 했던 가족. 힘겨운 나날이었지만, 함께 버티며 조금씩 희망을 되찾아가던 그때, 남편이 잠든 채로 세상을 떠났다. 믿기지도, 믿고 싶지도 않았던 이별이었다. 하지만 슬퍼할 겨를도 없이 다시 일어나야만 했던 말선 씨. 단단히 자라준 두 아들 덕에 견딜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사별 후 6년이 흘렀을 때 말선 씨에게 두 번째 사랑, 창래 씨가 다가왔다. 한동안 멈춰있던 말선 씨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말선 씨를 지고지순 사랑하는 또 다른 한 남자, 아들 최지훈(37) 씨.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육지로 떠났지만 내내 제주도에 계신 어머니가 마음에 걸렸다는데. 결국 2년 전, 다시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에게 농사와 양봉을 배우며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던 지훈 씨, 교육 프로그램에서 만난 권세나(31) 씨와 제주에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3개월 전, 딸 지나가 태어나면서 아빠가 되었다. 자식을 낳아 보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지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어머니의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 된다. 고생하며 산 어머니가, 두 번째 사랑과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지훈 씨. 말선 씨는 그런 아들이 고마우면서도 대견하다. 새 식구와 함께 모자의 사랑은 더욱 깊어져 간다.

가을이 오면 농사가 풍년인 말선 씨네, 올해는 농사만큼 사랑도 풍년이다.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어느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가을을 맞이하게 된 말선 씨. 메밀꽃처럼 사랑이 만개한, 말선 씨의 계절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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