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동진의 해안단구를 따라 발달한 수중 암반 지대. 봄부터 초여름까지, 이곳에는 자연산 미역밭이 형성된다. 아카시아 꽃망울이 터지면 미역 숲이 울창해졌다는 뜻이다. 정상록(81) 할아버지는 이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바다로 향한다.
할아버지는 떼배를 타고 창경으로 물속을 들여다보며 미역을 채취한다. 이런 미역 채취 방식을 ‘창경바리’라 하는데, 18세기부터 이어온 전통 어업이다. ‘창경’과 ‘떼배’는 창경바리의 상징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떼배 대신 동력선을 타거나, 창경 대신 잠수복을 입고 미역을 채취하는 어부들이 늘었다.
한때는 포구를 가득 메우던 떼배가 사라진 70년 세월 동안, 변함없이 떼배 위에서 창경을 들고 미역을 채취해 온 정상록 할아버지는 정동진의 마지막 떼배꾼이다.
정상록 할아버지는 부친을 따라 열 살 때부터 떼배를 타기 시작했다. 조부와 부친 모두 정동진에서 알아주는 떼배꾼으로, 할아버지까지 삼대째 이어온 가업이다. 1939년 부친이 미역 품평회에서 수상한 4등 상장을 할아버지는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동력선이 보급되기 전에는 오로지 떼배를 타고 미역 채취며 생선을 잡아 가난의 높은 파고를 넘어왔던 떼배꾼 삼대. 정상록 할아버지에게 떼배는 가족의 인생을 등에 지고 바다로 나아가던 아버지들의 초상이다.
미역 포자가 붙어 자라는 수중 바위를 ‘짬’이라 한다. 나뭇잎 같은 떼배가 행여 짬에 부딪혀 부서지거나 뒤집어질까, 지켜보기가 불안하다. 그러나 할아버지에게는 제일 편한 것이 떼배로, 한 몸이나 다름없다. 떼배 위에서 하는 창경바리 작업은 웬만한 어부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이른바 ‘창경 멀미’ 때문에 창경바리를 엄두도 못 내는 어민들도 많다.
2년 전 창경바리가 국가중요어업유산 14호로 지정된 데는 정상록 할아버지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함께 떼배를 타던 동료들은 모두 세월 앞에 무릎을 꿇었고, 남은 떼배꾼은 할아버지뿐이다. 창경바리 떼배꾼의 명맥이 이대로 끊어지지 않기를 마지막 떼배꾼은 소망한다.